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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이야기/나의 마음

휴가를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템플스테이 어때요?

템플스테이.


몇 년전부터 들어왔던 사찰 체험 프로그램. 그동안은 익숙했지만 왠지 나와는 거리감이 있는 단어였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 때 기억이 아직도 가슴 한복판에 아릿아릿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앞으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아릿한 기억. 그때의 이야기를 지금 하려고 한다.

휴가 = 쉼


회사에서 휴가일정을 정해놓고 멍하니 있었다. 뭘 해야하지?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나? 바다로 여행을 가야하나? 아니면 고향 집으로 내려가야하나 그것도 아니면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보내야 하나? 덥고 복잡한 여름에 진짜 휴가가 무엇일까? 많은 돈이 들지도 않으면서 잘 쉴 수 있는 그런 휴가.


우연히 템플스테이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몇 년전부터 한번즘 가보고 싶었던 템플스테이. 운명같은 우연으로 나한테 다가온다. "템플스테이" 단어를 검색어에 넣고 검색을 해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템플스테이를 경험하고 남긴 블로그 글들이 나온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담. 체험형?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절도 참 많구나"


그리고 다시 운명과 같은 우연으로 다가온 고창 선운사. 단순히 고향 광주와 가깝다는 이유로 바로 선운사 홈페이지로 가서 신청을 해버린다. 2박 3일. 아직 일정이 좀 남았지만 벌써 두근거린다. 그래 이건 무슨 뜻이 있는 것과 같이 나를 찾아왔어.


고향과 비슷한 고창


휴가 전날. 갑자기 몰린 업무로 새벽 1시가 넘어서 회사에서 나설 수 있었다. 정말 몸과 마음이 다 지칠대로 지쳐서 템플스테이고 뭐고 그냥 집에서 푹 잠이나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알람을 맞춰놓고 아침에 일어난다. 서울에서 선운사까지는 고창까지 3시간동안 직행버스를 타고 내려가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들어가야하는 코스다. 그래도 멀리까지 여행을 간다는 기분으로 다시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침 9시 버스를 버스터미널에서 타기로 했기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나가는데 딱 출근시간하고 겹쳤다. 평소에 걸어서 회사를 다니는지라 갑작스러운 지옥철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거센 물결처럼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난 길을 잃고 만다. 겨우 뚫고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벌써부터 지친 기분이다. 아마 누가 내 이마를 본다면 잔뜩 찌푸려져있을 것 같다.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에 탄다. 그래도 평일 서울에서 벗어나는 직행버스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복잡한 서울은 조금만 벗어나도 논과 밭이 나온다. 차가 꽉 막힌 도로로 한적한 고속도로로 이어이어 드디어 고창터미널에 도착한다.

 

왠지 고창터미널 정겹다. 예전 시골 할아버지 집을 가기 위해서 들렸던 터미널처럼 새것보다는 헌것이 더 어울리는 터미널. 일단 선운사까지 들어가는 시내버스를 보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거린다.

 


고창터미널은 시내버스 터미널과 함께 붙어있었는데 시내버스 타는 곳에 갔더니 저렇게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앉아계신다. 다들 비슷한 파마와 지팡이 그리고 시장에서 장을 보신듯한 짐들. 그리고 어렷을때 들었던 사투리가 귀에 솔솔 들려온다. 3시간 넘게 달려왔던 여행의 피로는 이미 다 사라졌다.


서울에서 가지고 왔던 급한 마음도 어디론가 날라가버렸다. 내리니 12시경이었는데 이미 점심 공양시간은 지났으니 굳이 선운사로 일찍 들어갈 필요는 없다. 마음이 편해진다. 버스 시간표도 확인했으니 바로 다음차 보다는 그 다음차를 타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곳 고창까지 왔으니 고창을 한번 둘러보는게 좋겠다. 왠지 서울에서는 구경하지 못한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을 것 같은 터미널안의 매점의 메뉴판(?)이 보인다. 정말 대부분의 생활용품을 다 파는듯 ㅎㅎ 이제부터는 일부러 가지고 있는 아이폰을 활용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다. 단순히 전화나 문자의 기능만 이용을 하겠다.

아까 할머니들을 보니 대부분 시장에서 장을 보신 것 같은데 그럼 근처에 고창 시장이 있을 것 같다.


터미널을 벗어나서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시장을 드디어 찾았다. 완전 재래시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시장풍경. 점심대신 시장에서 옥수수 3개를 사서 기웃기웃 거린다. ㅎㅎ 남자 혼자 가방을 메고 시장을 기웃거리는 모습이라니

선운사로 들어서다...

 


이제 시내버스를 타고 선운사로 들어간다. 버스안은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하긴 젊은 사람이 평일 낮에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다닐리가 없겠지. 안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서서히 시골을 떠나고 있으니. 나처럼 여행을 온 사람 몇몇하고 이곳 주민분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간다. 더운 날씨인데도 버스는 에어콘을 틀지 않는다. 대신 창을 조금 여니 바람이 상당히 상쾌하다. 도로는 한적하고 날씨는 좋고 바람은 시원하다.

 


서울에서는 버스 창문 열고 다니기가 무척이나 어렵지?? 꽉막힌 도로와 빵빵거리는 차들 사이에서 창을 열고 매연을 맡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다.



버스에 내려 선운사를 들어가기전에 있는 표지판. 선운사만 알았는데 은근히 암자가 많네? 저기 산은 나중에 한번즘은 올라가 볼 수 있겠구나...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 옆으로는 계곡 물이 흐르고 나무들이 길을 감싸쥐고 있는 기분이 든다. 덕분에 날씨가 더워도 상쾌한 기분이 든다. 공기도 좋고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 사푼사푼이 걷는 내 발걸음 소리도 가볍다.

 


드디어 선운사에 도착. 천왕문을 지나면서 지금까지 달고온 나쁜 것들을 모두 떨쳐낸다. 이제 이곳에 왔으니 훌훌 털어내고 잘 지내다가 가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운사 템플스테이를 플래카드가 보인다. 내가 선택한 형은 자율형. 휴식을 위해서 선운사로 왔으니 체험 보다는 나와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자율형이 어울린다. 자율형은 아침 저녁 예불과 공양 시간만 지켜주면 모두 자율적이다. 책을 보든 잠을 자든... 항상 시계와 알람. 계획적인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역시 자율형이다.

 


이곳이 내가 머무를 숙소이다. 정갈하게 생긴 이곳은 한옥와 양옥이 적절히 결합되어있다. 벌레들을 막아줄 모기장과 산사의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온돌방, 서양식 화장실이 갖춰져있다. 멀리서 온 사람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큰 부담이 없다.

 


내가 묶었던 '선정' 첫날에는 다른 한분과 함께 묵었고 두째날에는 총 세명이서 같이 방을 썼다. 서로서로 최소한의 배려로 불편함은 없었다. 나름 까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가기전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편안한 마음을 가지니 2박 3일 동안 한방을 쓴다는 점은 오히려 더 장점으로 다가왔다.

 


자 이제 선운사 팀장님을 만나서 수련복을 받고 선운사 안에서 지내는 예절, 절을 하는 방법, 예불과 공양시간들을 듣는다. 맞아주시는 팀장님 인상이 무척이나 좋다. 얼굴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어색함은 없고 편안함이 자연스럽게 뭍어난다. 옷을 갈아입고 귀여운 고무신을 신고 절 안으로 이제 빠져든다.

 


선운사를 둘러보기 전에 깨끗한 물로 몸을 다시 씻어낸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라 차가운 물은 아니지만, 몸안의 나쁜 기운들을 몰아내주는 것 같다. 깨끗하다. 어떤 오염이 있는지는 걱정하지 않고 몸과 마음으로 끝까지 받아들인다.

 

나에 대해 집중하기
 
선운사에서 자율형 템플스테이를 하면 최소한의 것만 지켜주면 누구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자고 싶으면 자고 누워있고 싶으면 누워있고 산에 가고 싶으면 산에 갈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말을 걸게 된다.


나무 평상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에 잠겨도 좋고 다른 분들과 한곳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된다.

 


선운사에 피어있는 꽃고 구경하고 마루에 앉아서 가져온 책도 읽어보고. 여기서 읽는 책은 서울에서 읽었던 책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새롭게 글자들이 다른 조합으로 나에게 다가오며 나를 반기는 것 같다.

 


진짜 사람을 만나다

 

이처럼 이곳에서는 나에 대해서 집중하기에 좋지만 사실 템플스테이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인 사람들이 많아서 서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왠지 동질감과 위안을 느낄 수 있다.

 


같이 나무 평상에 앉아서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눈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만나는 관계와는 무척이나 다르다. 굳이 서로의 이름을 알 필요도 속세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솔로인지 커플인지 기혼인지 미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다 같이 우리는 선운사안에 함께 있고 비슷한 마음으로 앉아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진짜 사람을 만나고 왔다.

 


목탁소리가 조용히 울리는 아침

 


첫날에는 하루종일 책과 나와 이야기를 했고, 그 다음날에는 몸을 움직여서 다시 나를 만나기로 한다. 선운사에서는 새벽4시에 기상을 하고 예불을 드리는데 어려울 것 같았지만 막상 일어나니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새벽에 울리는 목탁소리 그리고 다 함께 드리는 예불. 정말 고요한 산사에 조용히 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다. 예불을 마치고 미련이 남아서 108배까지 드린다. 엄청 힘든 것 같지만, 계속 절을 드리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무런 잡념이 없어지고 한 곳에 깊숙이 빠져든다. 다리는 뻐근해지고 옷을 땀으로 젖어들지만, 머리는 오히려 맑아진다.

 


예불을 드리고 아침 공양시간이 되면 절 뒤에서 산이 안개를 조금씩 벗겨낸다. 새벽에 흩어지는 안개를 보는 것 또한 잊을 수 없는 광경이다.

 


절에서 공양을 하는 것. 서울에서 먹었던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에 비해서 너무나도 훌륭한 식사다. 적절히 간이 되어있으면서 결코 지나치지 않은 맛. 각종 신선한 야채와 채소로 만들어진 식사는 선운사에 계속 남고 싶은 이유중에 아주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스님이 공양하는 것을 조금 보았는데 정말 설겆이가 필요없을 정도로 정갈하게 드신다. 아마 체험형으로 템플스테이에 갔다면 이런 풍족함은 못누렸을 것 같다. 공양을 하고 서로서로 모여서 설겆이를 하고 다시 우리의 자리로 돌아간다.

 

산행

 


함께 지내는 다른 분과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항상 절 뒤로 보이는 산이 부러웠는데 드디어 가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산에 올라가기엔 좋은 날씨인 것 같다. 

 


선운사는 절로도 유명하지만 뒤에 있는 도솔산(선운산) 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대장금의 주요 촬영지여서 이곳 저곳에 촬영장소라는 푯말도 볼 수 있었다. 왕복해서 3시간 정도 산을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 역시나 산은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올라갈때 내려가는 것을 걱정하면 정말 산이 힘들다. 올라갈때는 올라가는 그 느낌만 잘 간직하면 뻥 뚫린 정상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선운산안에는 불교 유적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암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암벽에 새겨진 도솔암 마애불을 보면서 감탄을 안할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조각을 한 것이지? 예전에는 공중누각까지 있었다는 설명을 보니... 새삼 하늘은 높고 대단하다는 경외심까지 든다.

 


마지막 인사

 


하산을 하는 마지막날 못내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신 팀장님께 차 한잔을 청한다. 이미 다른 한분과 이야기 중이지만 서슴없이 같이 자리에 앉는다. 이윽고 다른 한분도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합류를 한다.

 


2박 3일 동안 있으면서 내가 무엇을 얻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쉼이라는 휴가를 얻었고, 짧게나마 철갑 같은 내 가면을 벗어내고 물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넘치지 않게 편하게 있다가 하산을 한다.

 


같이 이렇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면서 이 곳은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속세에서 선행을 많이 해서 죽으면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것이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

 


한때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만큼 고통스럽다고 여겼었는데 선운사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억압이나 정해진 틀 없이 지내다 보니 다 내가 마음먹기와 행동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꽃



중국에서는 불교 전파 이전부터 연꽃이 진흙 속에서 깨끗한 꽃이 달리는 모습을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이라고 했단다. 비록 몸은 선운사가 아니라 서울에 있지만, 이 연꽃처럼 마음만은 속세에 물들지 않는다면 다시 평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다시 선운사로 가고 싶다. 그곳에서 다시 그때 만났던 사람들을 보고 싶고 맛있는 공양을 하고 108배를 하면서 집중을 하고 조용히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싶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내가 선운사에 갔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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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0) 2009.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