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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이야기/문화의집

남자 중학교 축제

오늘 전남의 한 남자 중학교의 축제를 지원하러 나갔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전래놀이마당, 먹거리마당, 체험마당을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전래놀이는 투호, 링던지기, 굴렁쇠 등등 아이들이 전래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놀이를 운동장에 깔아주는 것이었고 먹거리와 체험마당은 우리가 학생들에게 알려주어서 학생들이 직접해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처음 중학교의 인상은 썩 좋지 못하였다. 내가 예전에 중학교를 다닐때의 기억이 되살아 날 정도로 10년이나 세월이 무색할만큼 변하지 않았다. 축제 개회사를 하는 교장선생님 학교운영위원장 그런 윗사람들이 말만 번지르르한 개회사를 할 동안 선생님들은 연방 소리를 질러서 아이들이 못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여전히 뒤에서 움직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여하튼 우리는 짐을 다 풀고 각 마당을 운영해줄 도우미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며 잘될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꽤 협조적이었으며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질서있게 진행되던 축제가 점점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선생님들도 모두 사라졌도 지루했던지 도우미 학생들도 하나둘씩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가져온 기구들은 망가져가고 있었고 아이들은 자기들 멋대로 흡사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키듯 물건을 다루고 행동했다.

몇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아이들에게 소리를 치고 하지 말라고 강압적으로 나서면 아이들은 겁을 먹은듯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피하거나 아니면 시키는 대로 군말없이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눈에서 멀어지면 아이들은 다시 폭동을 일으키듯 멋대로 행동했다. 고학년들은 저학년들에게 자리를 뺏고, 우리가 가져갔던 보관용 물품들을 강탈하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빼내서 자기들이 이용하고 버리고 부수었다. 거기서 지도하는 선생님은 한두명에 불과했고 마이크로 형식적인 말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결국 우리가 가져갔던 짐들의 절반 이상이 사용할 수 없어서 버리고 올 수 밖에 없었다. 갇혀진 구시대적인 남자중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 관리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고 그에 따라서 폭력과 폭언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따라서 아이들은 그런 위협이 느껴질때만 형식적으로 보여줬고 그것이 사라지면 다시 일탈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감춰진 스트레스를 풀듯 아이들은 폭력적인 행동을 취했다.

자유와 방종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냥 공부 그리고 선생님이 시킨 룰대로만 길러지고 교육되어지는 아이들. 오늘의 이런 일들은 결코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준 교육, 선생님들의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