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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이야기

서울에서 목발 생활을 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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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다침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전에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발이 팅팅 붓고 목발 신세를 져야만 했다. 아주 어렷을적에 발을 다친적이 있지만 이렇게 기억이 날때 크게 다친적은 처음이라 목발도 처음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목발 정도야' 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게 막상 사용해보니 장난이 아니다. 오른쪽 발목을 다치면서 왼쪽 무릎도 다쳐서 무릎을 꿇는것도 안되고 발목을 다쳐서 똑바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무척이나 애로사항이 많다.

특히나 밖에서는 더욱 그랬는데 어쩔 수 없는 강의때문에 집을 나서서 1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했다. 발도 다쳤는데 무슨 버스나 지하철이냐고?? 그때 당시에는 내가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하겠지만, 돌아올땐 택시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내 계획으로는 버스 정류장까지 걸아간 후에 저상버스를 골라서 타고 지하철역까지 간 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내려간 후 지하철을 타고가자는 계획이었다.

저상버스가 없다.

하지만, 그 계획은 처음부터 틀어졌다. 우리집에서 홍대입구역 지하철역까지 가는 버스는 저상버스가 없는 노선이었다. 지금까지만해도 난 저상버스에 대해서 좀 회의적인 생각이 많았다. "과연 버스 기사분들은 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교육을 철저히 받았을까? 하루에 몇번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태울까? 그 정도의 장애를 가지신 분은 장애인 전용 택시를 타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발을 다치고 나니 저상버스에 대한 필요성이 정말 몸에 와닿았다. 일반인들에게는 오히려 차값만 비싸고 자리에 앉을때나 서있을때 불편한 버스정도였지만 나처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노인분들에게는 저상버스가 정말 편한 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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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표준형 저상버스

국내 표준형 저상버스를 도입한다는 기사를 봤을때도 아 저 밑에 앉아 있는 높으신분들은 일반 버스도 안탈건데 쇼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정말 빨리 모든 버스들이 저상버스로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다.. 정말 당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부족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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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상버스가 없어서 버스는 못타고 택시를 타고 홍대입구역까지 이동하기로 했는데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무사히 홍대입구역까지 갔는데 지도에서 보면 알겠지만 난 방향이 2번출구쪽에서 내릴 수 밖에 없는데 1번 출구와 2번 출구쪽에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설치가 안되어있는 역이었다.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는 4번출구 쪽에만 설치가 되어있다. 그리고 U턴을 할 수 있는 지역도 없어서 결국 택시에서 2번 출구쪽에 내려서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한발로 깡총 깡총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조금 내려가는데 두번이나 넘어졌으니... 얼마나 위험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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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계단에 설치된 손잡이

그래도 손잡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지 없었으면 더 불편할 뻔했다. 평소에는 거의 잡을 일이 없었는데 은근히 노약자를 배려하는 편의시설들이 갖춰져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온통 바쁜 사람들뿐.

난 서서히 내려가고 서서히 걸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천천히 가다보니 참 사람들이 바쁘게 빨리 걷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도 아니었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급하게 다니는것인지. 나를 툭툭 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는 사람들 에스컬레이터를 타야하는데 길을 아무도 안비켜주는 사람들. 순간 약자가 되다보니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온통 무섭게만 보인다. 지하철을 탈때도 빨리 내릴려고 하는 사람들. 빨리 타려는 사람들때문에 부딪히면서 겨우 지하철에 들어서지만 남아있던 자리는 이미 재빠르게 들어간 사람들때문에 자리가 꽉차있다. 힐긋힐긋 쳐다는 보지만 비켜주는 사람은 없다. 다행히 어떤 아주머니께서 여기 앉으라고 자신의 자리를 비켜줘서 앉게 되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오히려 옆에 있는 대학생들은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표정으로만 보인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노인분들에게 자리를 얼마나 비켜줘본적이 있는지. 지하철에서 노약자들이 길을 갈 수 있도록 기다린적이 있는지...

멀고도 먼 환승

다리가 편할때도 지하철 환승거리는 만만치 안았는데 역시나 다리가 불편하니 훨씬 어렵다. 에스컬레이터들이 설치가 되어있지만, 역시나 이 긴 에스컬레이터처럼 대림역의 환승길이는 길기만 하다. 목발을 짚고 쩔뚝쩔뚝 걸어서는 언제 환승할지... 평소에는 지하철을 놓칠까봐 빠른 걸음으로 후다닥 걸어갔겠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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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고도 먼 환승

그놈의 계단

상도역에서 내려서 다행히도 내가 가려는 방향쪽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가 되어있어서 조금은 돌아왔지만 편하게 올라왔다. 평소에 등산복을 입고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는 노인분들을 비웃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악착같이 자리를 뻬앗아 앉는 모습을 비웃는 내 모습도 함께 떠오르면서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신의 몸이 아프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을... 상도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중앙대 후문으로 갔는데 문제는 후문에서 건물안으로 들어가는데 계단이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반인이라면 대수롭지 않은 계단이었지만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내 처지로서는 낮은 계단이지만 어렵다. 그것도 익숙하지 않는 목발로 인해서 내 오른팔은 이미 마비가 될 정도였다. 몇번을 팔을 풀면서 도착!!

오마이갓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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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을 배려한 화장실 변기

사진처럼. 변기에 저런 손잡이가 달린 변기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갔던 중앙대 화장실에는 저런 손잡이가 달린 변기가 없더라. 불편해도 목발을 옆에두고 한발로 서서 일을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평소에는 귀찮은 물건들이 이제는 소중하게 보인다. 겪어봐야지 알 수 있는 물건들.

천천히 가는 풍경

다행히 나쁜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걸어갈 수 밖에 없어서 그동안에 못봤던 풍경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집 근처에 있는 가게들 그 속에 진열되어있는 물건들. 지하철안에 있는 물건들. 그리고 사람들. 바쁘게 걸어다닐때는 주변을 잘 보지 않고 쉽게 지나처버렸던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면서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집 근처에서 이런 물건을 팔고 있을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겼는지... 작은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면서 새롭기만하다.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이렇게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파지는 것 같다. 난 이렇게 약자가 되버렸는데 멀쩡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날 배려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불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왜 나를 치고 그냥 가버리고 내 앞을 가로막고 지하철에서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계단 옆에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만들지 않았으며 저상버스는 왜 그렇게 일부 노선만 다니는 것일까? 멀쩡한 정상인들을 위한 나라라란 말인가 라는 생각까지. 내 스스로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남탓을 하기 시작한다. 발을 다친 나를 안쓰럽게 또는 웃기다는 듯이  신기하다는 듯이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정말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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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운 배사마

내가 이렇게 돈도 많고 인기가 많은 배사마였다면 당연히 기사가 딸린 차로 휙휙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겠지만... 택시비도 아까워서 먼거리는 나가기 어려운 나로서는 참 억울하기만 느껴졌다.

다시 돌아가면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가면 내가 겪었던 저상버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계단에 있는 손잡이, 화장실 변기에 있는 손잡이, 멀고도 먼 환승통로, 지하철 노약자석등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이런 시설들을 기억할까? 바쁘게 걸어가면서 툭툭 쳐버리는 무심한 사람들. 난 조금 여유롭게 약자를 위해서 보호해줄 수 있을까? 다리 조금 다쳐서 깁스한 것 가지고 참 대단한 글 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자기 손톱밑의 가시는 정말 크게 느껴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래도

그래도 다행이다. 이런 불편함으로 인해서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그리고 약자에 대해서 더 많은 배려를 할 수 있게되어서. 정말 한번 목발 짚고 하루만 서울에서 생활해보라. 세상이 어떻게 달라져보이는지...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